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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 밤이 선생이다 | 문학동네 | 2013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참 인사적으로 읽었던 책이니다 

오랜 시대를 견뎌낸 선생님의 가르침 같다고나 할까요?

밑줄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늠될 것만 같다. (12)


□ 유희와 노름은 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삶과 노동은 이미 이루어놓은 결과에 줄곧 얽매여야 한다. (16)


□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사람들이 좋은 소금을 산답시고, 우리 고향 마을의 표현을 빌지자면 죽은 소금을 고르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이치다. 살아 있는 삶, 다시 말해서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21)


□ 몽유도원도의 관람은 일종의 순례 행렬이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해진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27)


□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 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 될 때 올 것이다. (33)


□ 보들레르는 “삶이 살고, 삶이 꿈꾸고, 삶이 고통을 견디던” 그 어둡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광장으로 바뀐 자리에서 제 삶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밝고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폐허에서는 어떤 감동스러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현대 예술은 이 도시라는 이름의 폐허에서 사라진 기억을 복원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51) 



밤이선생이다. 황현산 저. 좋은 글귀 모음  입니다. 

앞으로도 차근 차근 더 많이 올려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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